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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
131호
Nature & Crafts taste
강원 씨감자 ‘풍농’
VIEW.283
조은노_강원도청 대변인실
사진 김연미_푸드 전문 작가, 주민욱_본지 객원 작가
인포그래픽 최혜선_본지 객원 작가

강원 씨감자의 부흥을 꿈꾸다!  

국산 품종 개발, 오륜에 이어 풍농 보급에 나서

세계 5위 ‘종자 강국’의 감자 시장을 이끄는 강원도


   


우리나라는 지난해 1월로 일본, 독일을 제치고 세계 5위의 위업을 달성하며  

약 26만 개의 식물유전자원을 보유한 강국 중 하나로 등극했다.

2020년 12월 15일 농촌진흥청은 농업유전자원센터가 세계채소센터와 2008년 체결한 유전자원 안전 중복 보존 협약을 갱신하고,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세계채소센터의 모든 유전자원 456종 6만 5,000점을 장기 안전 보존하는 서비스를 제공, 1차로 국내에 87종 7,512점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밝혔다. 또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지정 세계 종자 안전 중복보존소로서 베트남, 미얀마, 몽골 등 10개국에서 맡긴 총 2만 7,325점도 관리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렸다.


K-종자 보존 국가로의 선언이었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다음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3년간 국내 상위 5개 종자회사 가운데 4개 회사가 차례로 외국 기업에 매각되면서 한국의 토종 종자, 육종 기술, 심지어 인력까지 모두 외국으로 넘어가 종자 주권 상실 시대로 불린지 24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종자 수출을 이뤄내며 K-농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해외 유전자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 유전자원(2020.7.1. 기준) 종자 1,599종 23만 7,872점과 영양체 1,488종 2만 6,088점 등 총 3,087종 26만 3,960점이 국내 저장고에 보존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저장고인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에 국내 토종 종자를 맡겨 국내외 모두 4곳에 중복 보존체계를 구축, 완료한 상태다.


이 K-종자 신화의 시금석 역할을 해온 작물 중 하나가 바로 씨감자다.  

우리나라가 생산 첫 단계에서 활용하는 수경재배 기술은 세계 각국에서 전수, 일부 국가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기술로 인정받으며 열매를 맺고 있다. 2009년에 시작한 해외농업 기술개발 사업(KOPIA,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은 매년 확장을 거듭해 현재 22개국(아시아 8, 아프리카 7, 중남미 5, CIS 2)에 센터를 설립했다. 볼리비아, 파라과이, 에콰도르와는 농업 협력을 맺어 씨감자 생산체계 구축을 위한 조직 배양실을 설치하고, 조직 배양묘를 공급했다. 알제리에서는 깨끗한 물속에서 병이 없는 씨감자를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수경재배 기술을 전수해 현지에서 3년 동안 9만 4천 개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또 KOPIA 에콰도르센터는 2012년 설립 이후 대량생산 기술을 지원, 감자의 원산지로 알려진 안데스 고산지대에 시범 마을을 2019년에 조성, 3년에 걸쳐 7개 주 15개 마을 276 농가를 대상으로 무병 씨감자 보급 사업을 진행했다. 이제는 아프리카, 동남아와 남미 등 개도국에서 이 수경재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매년 우리나라로 전문가를 파견하는 정도다.



바로 이 씨감자의 생산, 보급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강원도다.  

감자의 종주임을 자처하는 강원도에서 감자의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71년. 평창에 고령지농업연구소가 설립되면서부터인데, 고도가 높은 지역이 안전한 씨앗 터였기 때문이다. 

사과나 배처럼 열매의 씨앗으로 암수 수정을 하는 ‘종자 번식’ 작물과 다르게 별도의 생식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감자는 먹던 감자를 심어도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자란다. 이른바 ‘영양 번식’ 작물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자라면 생육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감자를 재배할 땐 ‘씨감자’라는 종자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감자는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해 같은 품종을 지속해서 생산하는 자기복제의 특징을 가진 작물인 만큼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노출 확률이 높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해발이 높은 대관령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969년 강원도 감자원종장 평창 설치로 시작한 감자와 강원도의 인연은 1976년 국립 종자 공급소 대관령지소 설립을 거쳐 2001년 종자 보급의 권한이 강원도로 전격 이양되면서 강원도 감자 종자 보급소가 만들어졌다. 강원도는 규모를 키워 2008년에 감자 종자진흥원으로 확대했으며 종자 연구를 위해 94년부터 지역 특화작목 시험장 안에서 소규모로 진행해오던 연구팀을 분리해 2019년에 강원도 농업기술원 산하에 감자연구소를 별도로 발족했다.

이들은 1,106㎡ 규모의 연구시설과 36,359㎡의 노지 포장 시설을 구축해 고효율 조직 배양묘 생산기술 개발, 상위 단계 씨감자 생산기술 개발과 조기 대량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생산단계별 병해충 관리, 신품종 현장 실증, 강원지역 기반 감자 산업화 모델 실증 연구, 서류 유전자원 관리도 하고 있다.


감자연구소에서 품종 개발을 끝내면 수경재배로 생산한 씨감자는 연구소 인근 밭으로 옮겨 다시 심는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딧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모기장 같은 망으로 겉을 씌운 '망실 하우스'에서 재배한다. 여기서 수확한 감자가 씨감자 기본식물이 된다. 이 기본 식물 생산을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 맡는다. 조직배양부터 수확까지 2년의 기간이 걸린다. 이렇게 수확한 감자는 감자원종장으로 보내지면 2년에 걸쳐 원원종과 원종을 생산한 후, 다시 감자 종자진흥원에서 원종을 계약 농가로 보내 1년간 재배해야 비로소 씨감자 보급종이 생산된다. 그러면 진흥원은 관리하는 생산 농가로부터 수매한 뒤 전국 감자 농가로 보내는 데 이 기간만 꼬박 5년이 걸린다. 이 시기부터는 농부들의 노력이다. 본격적인 감자 농사가 시작되고 다음 해가 돼야 비로소 우리는 감자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감자 한 알 먹는 데 필요한 시간은 6년.

품종 개발은 감자연구소, 씨감자 상위단계는 감자원종장, 보급종 생산은 감자 종자진흥원, 보급과 새로운 품종에 대한 시범 재배는 농업기술원(이하 농기원) 기술보급과, 농업인 지원 사업은 강원도청 친환경 농업과에서 주관하고 있다. 이들이 힘을 합해 투자한 6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씨감자의 텃밭을 지켜온 지 반세기. 

강원도의 감자 재배 면적은 5,913ha(2019년 기준)로 36%를 차지, 점유율 1위다. 감자 연간 생산만 199,157톤(전국­553,000톤).

지난해 생산한 씨감자는 6,938톤. 133 농가들이 심어 전국으로 보급했다. 왕산종묘(강릉 소재) 권혁기 농부는 국내 최초로 이 분야의 명인이 됐다. 종자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평생을 보냈으며 이제는 후계까지 길러냈다. 그는 생산물량의 10% 정도를 매년 출하한다.


강원도의 씨감자 종주의 아성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신품종 연구로 이어졌고 가공 시장에 적합한 품종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농기원의 감자 연구팀은 오랜 연구 끝에 지난해까지 8개의 새로운 감자 품종을 탄생시켰다.

미백·옥· 새알·오륜·풍농·자활·역강·자미.

5품종은 등록을 완료했으며 3품종은 현재 심사 중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공개한 국산 품종 오륜 감자는 국립종자원에서 평가한 국내 감자 품종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실상 미국 품종인 수미로 대표되는 시장을 개선하고, 가공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다.


농기원 작물연구과 맹진희 박사는 “오륜은 전분이 많고 저장기간이 길며 병해충에 강해 요즘 기후변화의 대표적 특징인 이상고온에도 잘 견디는 이용성이 높은 품종”이라며 “국내 감자 시장을 오랫동안 지배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품종 수미는 최근 기후변화를 겪으며 생리적 퇴화가 진행중이라고 판단했지요. 상품성도 떨어져 생산량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어서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병해충에 강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데 주목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농업인에게 건강한 씨감자 보급을 위한 생산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감자 종자의 다양화를 꿈꾸는 강원도는 올해부터 자체 개발한 풍농 감자 브랜드도 알리기 시작했다. 풍농은 생리장해에 강한 특성이 있다. 10a당 수확량은 4,468kg로 일반 수미감자와 비교했을 때 30% 이상 많고, 특히 눈이 얕고 저장성이 우수하다고 한다. 신속한 보급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범적으로 올해 안에 화천과 정선에 6ha 규모의 생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강원 씨감자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농부들과 협업한 가공시장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강릉 ㈜퀸비애그리푸드는 오륜 감자를 활용한 포짜(potato+pizza)를 출시해 호평을 받았고 최근에는 한우 빵을 제조, 강릉 주문진의 복사꽃 살롱 카페와 협업해 성공리에 판매하고 있다. 감자 유통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 애그테크 기업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청년 기업 록야는 원주에 터를 잡았다. 평창의 브레드 메밀 카페는 감자 소재를 빵으로 만들어 전국에 판매 중이다. 춘천 감자 아일랜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평창 감자를 15% 가량 첨가해 시그니처 맥주인 ‘포타페일에일’을 제조해 판매, 명성을 얻어 롯데백화점 전국 28개 매장에 입점했다. 춘천의 감자밭도 지역의 감자를 주재료로 만든 ‘감자빵’을 테마 브랜드로 성장하는 농업 벤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농업 전망­2022’에 따르면 세계 종자 시장 규모는 100조 원을 넘어섰다. 우리가 강원 씨감자의 부흥을 꿈꾸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