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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
131호
Nature & Crafts taste
김유정 소설 따라 걷는 ‘실레마을 이야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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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민_강원도청 대변인실
사진 박상운, 전영민_강원도청 대변인실
자료제공 마을공동체 실레마실, 사단법인 문화커뮤니티 금토, 김유정 문학촌


춘천 문학 기행

김유정 소설 따라 걷는 ‘실레마을 이야기길’


   


기나긴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다시 찾아온 2022년 봄.  

칠흑같이 어둡던 일제강점기를 오로지 문학을 향한 열정 하나로 살아낸 작가 김유정(1908~1937) 서거 85주기의 봄이기도 합니다. 

체험적 소재인 빈곤한 서민의 삶을 마치 풍자처럼 적나라하고도 담담하게 써낸 김유정, 그의 뛰어난 현실 인식이 유달리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뭉클 타오르는 청춘, 그토록 바랐던 서른 번째 봄, 춘천 실레마을을 가득 채운 그 진한 향취를 전합니다.  - 글쓴이 註



# 예술촌으로 거듭난 강원도 산골  

5월의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소설처럼 서정적 향기가 짙다. 앞뒤 좌우에 굵직하게 솟은 푸른 산, 산비탈에 포근히 깔린 잔디, 쫄쫄 내솟는 샘물까지 한 편의 시를 그린 듯한 고즈넉한 목가적 풍경은 봄볕만큼이나 마음을 한껏 늘어지게 만든다. 


이른 아침, 춘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원창고개 마루턱을 느릿느릿 넘어 도착한 신동면 증리.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이다.  

용머리 형세인 금병산(金屛山, 652m)이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과 어우러져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모습이 꼭 떡시루 안에 든 것 같아 실레(이곳 토속어)라는 두 자가 마을 어두에 붙었다고 한다.




“김유정의 30여 단편 소설 중 12편이 농촌 소설이고, 그중 교과서에 실린 ‘봄·봄’, ‘동백꽃’을 비롯해 ‘가을’,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만무방’, 7편에 이 동네 지명이 등장합니다. 마을 전체가 작품 무대입니다.”  마을 어귀 김유정문학촌. 취재를 동행한 봄내길의 이야기꾼이자 마을 실레책방 주인인 어선숙 선생의 말로 문학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한적한 산골에 놓인 실레이야기길은 의암 순례길, 북한강 물새길 등 춘천의 문화와 자연을 소개하는 ‘봄내길’ 8곳 가운데 1코스에 해당한다. 김유정의 추억이 깃든 5.2㎞ 문학 산책길로, 마을과 금병산 언저리를 한 바퀴 뺑 걸으며 소설 속 명장면들에서 따온 열여섯 마당을 둘러볼 수 있다.  마을 안쪽으로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봄·봄), ‘들병이들 넘어 오던 눈웃음길’(산골 나그네)이, 산자락에는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동백꽃),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가을) 등이 나 있다. 이를 설명하는 곳곳의 동판 팻말들이 당대 시풍 속을 걷는데 한몫 거든다.


마을 복판, 주민들이 교수촌이라 부르는 금병산예술촌 ‘산국농장 금병도원길’을 지났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과 잣나무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40년째 이곳을 애지중지 일궈 온 농부이자 산지기 시인 김희목 선생을 필두로, 1990년 금병산에 처음 봄봄길을 만들며 한평생 김유정을 연구한 작가 전상국, 마을을 아름답게 채색한 수채화가 유명애, 한지 거장 함섭, 도예가 김윤선 등 각 분야 대가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의 예술촌을 이뤘다.  이 정도면 ‘예술 창작소’라해도 과언이 아닐 터. 실레의 비밀이 갈수록 궁금해졌다.



# 금병산 동백꽃

마을 상부에 있는 ‘강릉최씨 열녀각’과 ‘책과 인쇄박물관’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길 5분여 쯤, 금병산 초입에 닿았다.  완만한 경사, 나직한 언덕에다 대부분 흙길이어서 아이들도 쉽게 완주할 수 있다.  


본래 이름은 진병산(陣兵山). ‘임진왜란(1592년) 때 강원도 원호 장군과 병사들이 진을 치고 승리한 산’이라 하여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도 그리 부른다. 서울로 진출하거나 대룡산으로 퇴로를 확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1895년 을미의병장 이소응이 춘천의병을, 1907년 정미의병 이강년 부대가 서울 진격 작전을 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마을 공동체 실레마실)

 

초목의 내음이 꽤 시원하다. 그의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에서처럼 한창 새로 튼 잎이 퍼지는 이 계절, 바람이 풍기는 금병산의 향취를 글로 형용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무성한 수목 사이를 피톤치드가 가득 메우고 있는 산뜻한 느낌이랄까! 빼곡히 둘러싼 잣나무숲, 땔감으로 사용했던 참나무, 신갈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가을이면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를 정도라니, 울창한 수풀을 보며 ‘치유의 숲으로 이만한 곳이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  잠시 마스크를 시원히 벗고 깊이 들숨을 삼키니, 온몸이 해독되는 듯한 개운함이 감돈다.



 
“이게 바로 동백꽃 나무입니다. 남쪽 지역에서 흔히 말하는 빨간 꽃 동백(Camellia, 카멜리아)과는 달라요. 이 지역에선 매년 노란 꽃잎을 피우며 가장 먼저 봄빛을 알리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부릅니다.” 한반도 자생 고유 식물로 야생에서도 특별한 관리 없이 잘 자란다는 어 선생의 첨언에 그 모습이 우리네와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점순이와의 추억이 담긴 나무가 바로 저 동백이겠지.’ 잔망한 속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 실레를 지키는 여신과 뜻을 담은 글방 

금병산 전망대를 지나 접어든 하향길, 산신각이다. 실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진병산신령을 위기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여신으로 여기고, 매년 음력 3월3일(삼짇날, 여자의 날) 백설기와 감주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해왔다. 동제(洞祭)로 지금도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으나, 오십 호도 못 되던 빈약한 촌락은 오늘날 1,200여 세대로 늘어나 증1리와 증3리로 나뉘었다. 이 때문에 금병산 안의 산신각은 1리 주민들이, 3리 사람들은 금병산 초입 농원 뒤에 산신각을 세워 모시고 있다.  (신동면, 2022년 5월 기준) 



하산 후 다다른 마지막 길목, ‘금병의숙(金屛義塾)’ 터. 현재 마을쉼터로 사용되는 이곳은 과거 수아리 개울이 흐르던 자갈밭이었다고 한다.  1931년 고향에 내려온 스물셋의 김유정은 조카 김영수와 함께 마을 주민 이남춘 씨가 기증한 이 터에 야학당 ‘금병의숙’(뜻을 담은 글방)을 세웠다. 무지한 마을에 지핀 계몽의 불씨였다. 당시 그의 제자들이  개울 건너편에서 가져와 식수한 어린 느티나무는 이제 아흔 살, 둥치가 아름되는 거목이 됐다. 


시원히 그늘 드리운 느티나무 아래,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실레마을 이야기가 마냥 기분 좋게 스친다. 그를 찾으러 떠난 분주한 발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춘천 실레마을, 실레이야기길(봄내길 1코스) 

소요시간 : 5.2㎞, 약 2시간 소요

코스 : 김유정문학촌 – 강릉최씨열녀각 - 책과인쇄박물관 - 실레농원 – 금병산 - 전망대 – 산신각 – 금병의숙터

문의 : 사단법인 문화커뮤니티 금토.  www.bomne.co.kr  ☎ 033-251-9363. 

교통 : ITX청춘열차(용산역~김유정역), 경춘선 전철(청량리역 또는 상봉역~김유정역), 춘천 봄봄 마을 버스 신동면1~3, 남산1~2(김유정문화촌~김유정역~금병초교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