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일찍 단풍이 드는 나무의 하나라는 자작나무.
노랗게 이파리가 물들어 단풍과 어우러진 자작나무 숲의 가을은, 온통 은빛으로 물든 겨울과는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 낸다.
국내 ‘자작나무 숲’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다. 여름과 겨울, 그리고 가을. 이렇게 꼭 세 번은 다녀가야 이곳을 제대로 봤다는 해설사의 말처럼 필자의 눈으로 봐도 가을 풍광이 최고다.
탐방로는 0.9㎞의 자작나무 구간,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치유 구간이 1.5㎞, 작은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탐험 구간이 1.1㎞, 원대봉 능선을 따라 천연림과 자작나무가 조화를 이룬 힐링 구간 2.4㎞.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난다.
두 번 이상 다녀갔다면 해설가와 함께하는 탐방 코스도 괜찮다. 자작나무에 얽힌 그네들의 여러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시사철 하얀 껍질로 덮여 있어 숲의 귀족으로 혹은 나무들의 여왕으로 불리며, 동양에서는 아름다운 사람을 가리키는 가인으로 칭해졌다는 자작나무.
북유럽, 러시아, 캐나다 영화나 백두산의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이것으로 명함도 만들고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했다니 낭만 가득하다. 또 그 껍질의 기름기 때문에 잘 썩지 않아 신라 시대의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촛불이 없던 시절에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신해 쓰였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인터넷을 통해 회자하는 이야기도 귀에 남는다.
시대를 넘어 훌륭한 고전으로 남은 작품 100년 전 소설 빨강머리 앤.
캐나다 출신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소설로 작가의 고향이자 배경이 되는 캐나다 남부의 아름다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자작나무를 그대로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려냈다는 이야기까지.
그래서일까? 사진작가도 알았나 보다.
빨간 망토를 두른 모습이 그림처럼 잘 어울릴 것이라는 걸.
1989년부터 시작한 조림으로 이제는 6㏊ 규모라는 원대리 자작나무숲.
곧게 뻗은 은회색 빛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붉은 단풍이 몹시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