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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황교익의 '강원도 맛'이야기(라싸브어)

  • Date.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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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음식 깃든 강원의


 

 

강원도에 봄이 오면

20 전의 일이다.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의 깊은 산골로 산나물 취재를 적이 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비포장 길로 30 분을 걸었다. 산중턱에 조그만 집이 나타났는데, 예전에 화전을 일구던 지역이었고 집만 달랑 남아 있었다. 겨릅대로 지붕을 이었고 방이 , 부엌 외양간 하나의 구조였다. 주변으로 꽃이 피어 꽃대궐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곳에서 평생을 같이한 노부부가 나를 맞았다.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에 할머니와 산나물을 뜯자고 집을 나섰다. 멀리 것도 없었다. 문을 나서자 바로 나물 밭이었다. 할머니가 뜯는 풀들을 보니 먹지 못할 것보다 먹을 것이 많아 보였다. 나물취며 딱주기며 곤드레며 할머니는 하나하나 이름을 일러주며 나물을 뜯었다.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 나물 이름을 적고 외는 집중하다가 문득 예쁜 보라색의 꽃을 피운 풀을 발견하였다. 눈에는 개불알꽃으로 보였다. 사진으로나 보다가 야생 상태에서 처음 대하니 개불알꽃이 맞나 싶었다.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 이거 개불알꽃이지요?” “몰러.” 혹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가 싶어 질문을 고쳤다. “ 이름이 뭐예요?” “몰러.” 할머니는 예쁜 꽃의 이름을 몰랐다. 나물의 이름은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이름은 몰랐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피니 개불알꽃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었다. 예부터 산골에 개불알꽃은 피고 졌을 것이고 할머니는 개불알꽃과 함께 봄을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꽃은 그냥 이름 없는 꽃이었다
 

강원도 산골 할머니의 삶에 개불알꽃은 이름을 붙여줄만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해 보였다. 개불알꽃은 먹을 것이 아니다. 화전민의 곤궁한 삶을 생각하면 할머니 삶에서 나물취며 딱주기며 곤드레 등등의 먹을 풀들만 의미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중에서 일부인데 한국인이면 아는 시이다

인간이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명명하는 과정에서의 의미 형성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인간은 당장에 소용에 닿지 않는 존재에는 관심이 없고, 그러니 존재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것에나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고 다음에 존재는 이름이 붙지 않은 여느 존재와는 차별화된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대체로 세상살이가 흥미롭고 재미나려면 주변의 모든 존재를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을 하여야 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손에 만져지고 입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이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더더더 행복해진다.


 


진경수에게
강원도의 봄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존재의 의미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떻게 불러주는가에 따라 존재 의미는 다양한 변주를 하게 된다. 남작을 두고포실한 감자라고 의미를 붙인다고 하였을 때에 말을 농민이, 상인이, 요리사가, 미식가가, 어느 누구가 하는가에 따라 집중도와 확장력은 달라진다.
 

강원도 농수축산물이 맛있다는 것은 한국인이면 대체로 공유하는 의미이다. 그런데, 맛있음의 의미가 토속이나 전통에 크게 기대어 있다. 강원도 농수축산물로 하는 음식이 강원도의 전통적 토속음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 감자하면 감자옹심이나 감자전, 강원도 산나물 하면 산나물비빔밥이나 산나물솥밥, 강원도 고랭지 배추 하면 배추김치나 배추전…. 이같은 강원도 먹을거리의전통적 토속적존재 의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면 답답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럴 때에는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경수는
프랑스 요리 전문으로 하였다
.

 ‘
전문으로 한다 아니라전문으로 하였다 까닭은 그의 요리에 국적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재료의 사용과 요리법에서 프랑스의 범주를 넘어버렸다. 진경수는 진경수식의 요리를 한다.
 

어느 문득 진경수가 강원도 식재료만으로 코스를 만들면 어떨 것인지 내게 물었다. 흥미로운 일이라 하였다. 강원도 식재료를 이용한 단품 요리를 내는 식당들은 있으나 강원도를 주제로 코스 요리는 내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동안에 그는 강원도를 많이 들락거려 강원도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내게
말하기 전부터 준비한 것이니 머릿속으로 요리를 하고 버리고 것이 어마할 것이다. 강원도의 농수축산물에 이미 존재하는 강력한 의미를 뒤집고 새롭게 의미를 찾아 붙이는 작업이니 진경수의 머릿속은 복잡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진경수의 강원도 음식이 탄생하였는데, 이름이강원도에 봄이 오면이라고 붙였다. 그래, 강원도의 봄만큼 아름다운 시공간이 있었던가
 

강원도의 봄이 마냥 화사하지만은 않다. 꽃은 피었는데 나뭇잎은 아직 초록이 없기도 하고 산비탈의 밭은 경운을 하여 흙색을 낸다. 그래서 뭉툭하게 밝다. 진경수가 엮은 강원도의 봄도 그렇다. 마냥 밝은 봄의 맛이 아니다. 산나물의 씁쓰레함이 있고 감자나 메밀의 밋밋함도 붙였다. 작게 오밀조밀 내니 이때까지 먹어온 강원도의 식재료임에도 무척 새롭다. 특히 철원의 고추냉이가 조합에 따라 전혀 새로운 맛으로 변할 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칼럼에서는 음식 맛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피하는 것이 바를 듯하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많은데 글까지 구체적이면 먹고도 먹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은, 사진과 글이 아무 소용없다. 먹어야 한다. 먹어봐야 의미가 발생한다. 진경수 덕에, 강원도의 봄에 새로운 의미가 하나 붙었다.

 

: 황교익 유명 칼럼니스트, tvN 수요미식회 패널리스트, 강원도 명예도민

사진: 박상운 강원도청 대변인실

촬영협조: 라싸브어, 서울 서초구 서래로 24. 02-591-6713. 오는 6월까지강원도에 봄이 오면 주제로 정찬코스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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