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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황교익의 정선 황기족발

  • Date.20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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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황기족발

돼지고기 향을 살려내다

 

 

족발의 뜻

족발은 돼지의 앞뒤 발과 그 바로 위 관절 부위까지를 말한다. 족이 발이고 발이 족이니 같은 뜻의 말이 반복되어 있다. 이 족발이라는 단어는 소에는 쓰지 않는다. 소의 그 부위는 우족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족발은 각을 뜬 돼지의 발. 또는 그것을 조린 음식으로 나와 있다.

 

 

대체로, 한자로 사물을 이르면 고급하고 한글로 이르면 저급하다는 관념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한자는 귀족적이고 한글은 서민적이다. 서민이 듣기에 기분 좋은 말로 하면, 한글로 쓰면 친근하다.

 

돼지의 앞뒤 발과 그 바로 위 관절 부위를 이르는 단어가 족발인 것은 이것으로 조리된 음식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돈족 또는 돼지다리라 이르지 않고 족발이라 부르는 까닭에서 족발을 소비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소의 다리는 고급 보양음식 재료이다. 우족은 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족을 푹 곤 국물은 특별난 사람이나 먹는 것이다. 기력이 쇠한 어른, 아이를 낳은 산모, 몸이 허약한 장손이나 이 우족을 먹을 수 있다. 집안에 특별 난 사람은 있는데 우족을 살 여력이 없으면 돼지의 다리로라도 탕을 끓여야 한다.

 

푹 고면 우족 탕에 비해 어딘지 빈 듯 하지만 영양가 풍부한 음식으로 보인다. 족발에 대한 자료를 보면 한결같이 이 보양 컨셉트의 언설이 붙어 있다. “기력을 보하고 산모의 젖을 많이 나게 하며……소 다리가 으뜸이면 돼지 다리는 버금의 보양음식은 되는 것이다


 
사물의 이름에는 그 이름을 사용하는 언중의 마음이 묻어 있다. 특히 음식 이름 중에 '재료+조리법'으로 구성된 일반의 단어가 아닌 것에는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정서가 강렬하게 박혀 있기 마련이다.

 

 족발도 여기에 해당하는 음식 이름이다. 돼지 다리가 소 다리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보양음식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돼지 다리를 그냥 돈족이라 하면 보양음식의 으뜸 자리에 있는 우족의 명성에 손상을 줄 수가 있다. 돼지 다리를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하여도 우족은 언젠가는 먹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으뜸의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 돈 족보다는 급이 낮은 어떤 단어가 필요한 것이다.

 

족은 족인데 우족보다는 모자란 족. 족은 한자어이니 같은 뜻이지만 이보다 급이 낮은 한글의 발이라는 낱말을 덧붙이자 생각한 것은 집단무의식의 일이었을 것이다. 보양음식의 으뜸인 에 서민적이고 친숙한 ''을 붙이면서 언중은 아주 만족하였을 것이다. 서민의 보양음식 이름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중국식 족발 요리

집에서 해먹는 족발의 보양음식은 탕이 대부분이지만 바깥에서 먹는 족발 보양음식은 조림이다. 간장을 기본양념으로 푹 조린 것인데, 족발이라 하면 생의 족발 외에는 이 음식을 뜻한다. 찝찌름한 간장 맛에 설탕의 단맛, 생강의 싸한 맛, 그리고 가끔은 여러 한약재의 향이 더해져 있다.

 

조선의 문헌에는 이런 음식이 없다. 그러나 문헌에 없어도 있었을 수는 있다. 일부 지방의 제사음식 중에 간장으로 조리는 닭찜이 있는데, 이 조리법에 닭 대신 돼지고기나 족발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별스런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이니 조선의 누군가가 지금의 족발과 유사한 음식을 먹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쉽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돼지고기가 귀했을 것인데, 그 족발로 수율이 극히 떨어지는 조림을 해먹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어렵다.

 

 

어쩌다가 해먹었을 것 같은 음식 정도로는 문화가 될 수 없으며, 이를 붙잡고 연구하는 것도 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족발의 조리법과 맛에서 거의 유사한 음식이 한반도에 있다. 중국음식점의 오향장육(五香醬肉)이다. 오향(五香)에 간장()을 더한 국물에 돼지고기()를 조려낸 음식이다.

 

 

오향은 다섯 가지의 향신료, 즉 초피, 팔각, 회향, 정향, 계피를 말한다. 서울에 이 오향장육 전문점이 몇 군데 있다. 오향장육과 족발은 그 맛이 흡사하다.

 

 

한국인이 싫어하는 몇 가지 향신료만 빼면 딱 그 맛이다. 장충동 족발의 원조 격에 드는 한 할머니도 여러 인터뷰에서 중국집의 족발 음식을 보고 이를 따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오향장육이 우리의 족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강원도 정선식 족발 요리

중국식 족발 요리법이 크게 번진 것은 돼지의 누린내 탓이 크다. 각종 향신료에 간장을 더하면 웬만한 잡내는 다 잡으니 돼지 누린내는 아예 없어진다. 단점이 있다. 돼지고기 특유의 좋은 향이 함께 사라진다.

 

시중의 족발에서 돼지고기의 맛을 즐기는 일은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정선의 황기족발은 시중의 족발과 그 맛이 확연히 다르다. 돼지고기 특유의 향이 살아 있다. 황기 외에 다른 재료는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선에서 족발에 황기를 넣어 요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족발이란 음식이 크게 번진 것이 1970년대의 일이며, 정선에서도 사정이 비슷하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돼지를 대규모로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며 그때부터 온갖 돼지고기 요리들이 퍼졌다. 정선에서도 초기에는 중국식 요리법의 족발이 강세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돼지 누린내가 강하였고 그 냄새를 잡자면 중국식 조리법이 적당하였다. 그런데 요즘의 돼지고기는 누린내가 거의 없다. 사육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족발에 황기를 넣어 삶자고 생각한 것은 황기닭백숙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정선은 황기 재배의 적지여서 예부터 황기를 음식에 많이 이용하였고, 그 중에 황기닭백숙은 흔히 먹는 음식이었다.

 

닭백숙 하면 인삼닭백숙, 즉 삼계탕을 흔히 떠올리는데, 닭고기의 맛을 살리자면 인삼보다 황기가 낫다. 황기는 달다. 쓴맛이 없다. 흐릿한 한약재 향을 올리는데, 그 향이 강하지 않아 닭고기의 맛을 치지 않는다.


황기족발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에 나는 !” 하였다. 훌륭한 조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냄새나는 물퇘지도 드물어 돼지의 잡 내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적당히 달며 은근한 향의 황기가 붙으면 더없이 어울릴 것이란 느낌이 왔다. 무엇보다 돼지고기 특유의 향을 잘 살릴 것이라 판단하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황기는 돼지고기의 향이 적절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여기에 된장이 무엇보다 잘 어울렸다. 황기족발에는 간장이며 여러 향신료의 향이 없으니 된장의 풍성한 발효취가 더 돋아 느껴졌다.

 

살을 쭉쭉 찢어 따뜻하게 낸다는 것도 특징적이었는데, 잔칫집에서 한 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음식은 끝없이 변한다. 식 재료와 조리도구의 변화에 따라, 또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늘 새로운 조리법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또 등장한다. 정선의 황기족발도 그 변화의 흐름 안에 있다.

또 누군가가 족발에 강원도 특산의 무엇을 더하는 이들이 분명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더 맛있는 강원도가 될 것이다. 당분간은, 정선에서는, 황기족발이다.

 

 

: 황교익 유명 맛 칼럼니스트, tvN 수요미식회 패널리스트, 강원도 명예도민

사진: 최돈기 정선군청

음식 촬영협조: 동광식당 033-563-3100

가정식 황기족발 재현은 정선군 농업기술센에서 제작중인 아리랑의 애환이 깃든 정선 토속음식 304을 위해 촬영한 김수엽씨(화암면 소금강로) 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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